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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율 머신들과 컨트롤 욕구, 그 적당히 귀찮은 UX의 미학 (2)
    IT/IT Column 2018. 7. 20. 13:04

    자율 머신들과 컨트롤 욕구, 그 적당히 귀찮은 UX의 미학 (1)


    위 글에서 이어집니다



     

    III.      고려해야 하는 인간의 욕구 3가지


    마냥 편할 것 같은 저런 자동화 경험들이 불편한 이유, 그래서 자율 주행차 같은 떠들썩한현상을 보면서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뭘까? 그냥 우리가 로직을 짠 대로, 기계가 맞춰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인간은 뭔가를 컨트롤하려는 욕구가 있다 (컨트롤 욕구)

    세상의 모든 사물과 동물들보다 위에 있는 인간은 대대로 그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다.인간이라면 그런 것들을 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컨트롤하려고 해왔다.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람 개개인은 매 순간 뭔가를 컨트롤하고 있다. 인간의 손과 발은 그런 컨트롤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걸 몸이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이 뭔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들에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 자연재해나 초자연적인 현상들처럼 태생부터 인간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고장난 기계들이나 광견병에 걸린 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이해하고 컨트롤했던 것들이 그 범위를 벗어나버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낀다.

    자동화라는 이름 아래 만드는 뭔가가 세부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을 간과해버린 경우에는 위 내비게이션의 예처럼 불편해져 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나의 존재를 알리고 개입하고 싶어 한다

    알아서 해주는 것들이 좋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너무 빠져버리면 또 그것은 그렇게 원하는 바가 아닐 수 있다. 자동으로 착착 진행되는 데서 본인이 개입할 여지가 너무 없어져 버리면 편함 속에서도 원치 않는 편안함이 되기 쉽다.



    이것은 인간들이 모인 조직 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과감한 권한 위임을 통해 직원들이 아주 자율적으로 결정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막상 본인이 개입할 여지도 없어져 버릴 정도로 뭔가가 진행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관리자들이 대부분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꾸 보고를 하게 하고 대안을 가져오게 하면서 본인이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싶고 한번은 거쳐가게 만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나 자율 주행차가 만들어 내는 경험에서도 자칫 인간의 개입 여지와 존재감을 지워버리면 그 자동화는 실패할 수 있다.

     

    무언가를 길들이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뭔가가 자신한테 맞춰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역시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동물 사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취향과 성격에 맞춰 적응해 가는 것, 어찌 보면 결혼과 연애도 이런 과정이라 볼 수 있고 낯설었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길들여지는 것도 이런 과정이다. 그냥 한방에 맞춰지는게 편한거 아니야? 싶지만 미묘하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 과정 자체를 의미있게 생각하고 거기서 삶의 재미를 느끼곤 한다.

    미리 파악하고 짐작해서 나한테 맞춰지는 것은 재미 없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과 선택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다르게 피드백을 주고 그로 인해 더 잘 맞춰지는 그런 모습, 그런 것들이 상당히 재밌는 과정이다. 그저 알아서 드라이빙을 해 버리는 자율 주행보다는 내 작은 운전습관까지 민감하게 학습하면서 차가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는 자동차. 그래서 같은 제조사 같은 기종의 자율주행차이지만 어떤 오너가 길들였느냐에 따라 약간씩은 다른 특성을 보이는 경험들이 훨씬 재밌지 않을까?

     

    IV.    그런 기저 욕구가 만들어 낸 사례들


    이런 욕구들을 반영한 제품이나 경험들은 주변에 사실 많다. 긴 역사를 가진 제품들이 신기술이 적용되면서 많이 디지털화, 네트워크화 되었지만 여전히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이유도 이런 욕구들과 관계없지 않다.

    첨단 센서들과 기술들의 집약체인 스마트 워치. 자동으로 내 니즈와 정황을 파악하고 뭔가를 알려주는 기기로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스마트워치라서 그동안 인간이 손목에 찼던 시계들을 순식간에 대체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지만 한켠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들린다. 오토매틱 시계가 그 한 예이다. 하루 이틀만 놔둬도 초침이 가지 않고 서버리는 시계, 무겁고 비싼 그런 구시대 유물 같은 시계, 스마트워치에 비해 클래식한 디자인 말고는 장점이 없어 보이는 오토매틱 시계가 왜 아직까지 제법 시장을 가지고 있을까?


    아날로그 시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디자인 이슈도 있지만 그 안에 미묘하게 스며들어있는 인간의 욕구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조금은 귀찮지만 아침마다 흔들어 깨우고, 밥을 주고때로는 시침과 분침을 맞추는, 그 행위 자체에서 작은 즐거움이 있다. 나로 인해 멈추어 있던 것이 살아나고 숨소리를 듣는 것처럼 째깍째깍 소리로 피드백을 주는 녀석.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존재감도 심어주는 녀석이 디자인까지 멋지다 보니 여전히 시계 박스에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만년필이라는 녀석도 그렇다. 뛰어난 필기감 빼고는 세상 불편한 것이 만년필이다. 아이패드프로나 갤럭시노트와 같은 디지털 펜 제품들이 판을 치고 그런 디지털이 아니더라도 볼펜이나 샤프 같은 엄청난 발명품들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사람들은 만년필을 찾는다. 간헐적으로 잉크를 주입해야 하고 때로는 손과 노트가 잉크 범벅에 더러워지기도 하지만 만년필은 마치 내 pet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녀석 역시 내가 직접 잉크를 주입하면서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존재감도 주면서, 어떤 잉크를 내가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고 내 미세한 컨트롤에 따라 그날그날 글씨도 달라진다. 그러면서 펜촉이 나에게 길들여지게 되고 그러면서 만년필 하나가 조금씩 조금씩 내 것이 되가는 느낌. 다들 별 차이 없는 볼펜이나 디지털 펜보다는 귀찮지만 이런 욕구와 느낌을 주는 제품이기에 만년필을 찾는다.



    핸드드립 커피도 마찬가지다. 쉽고 빠른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캡슐 커피를 두고 왜 저 귀찮은 걸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핸드드립 커피이다. 하지만 원두를 고르고 그 원두를 어느 정도로 가느냐에 따라, 그리고 기다란 드립포트로 손동작을 어떻게 하고 얼마나 숙련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 맛 자체가 이 핸드드립 커피의 매력이다. 맛도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좋기도 하지만 이런 수동이 주는 인간적인 매력이 다 똑 같은 품질로 뽑아내버리는 그런 자동 머신보다 훨씬 매력 있기에 매니아들이 아직도 많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자동 기어도, 수동기능이 여전히 들어가고 있는 카메라들도 유사한 이유이다. 모든 걸 다 자동화해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제품과 경험들이 보여주고 있다.

     

    V.앞으로 유념해야 할 자율 머신들의 경험 차별화


    이런 인간적인 개입으로부터의 존재감, 그리고 뭔가를 컨트롤하고 길들이면서 느끼는 재미는 앞으로 쏟아져 나올 수많은 자율 머신들이 눈여겨 봐야 할 단초가 된다.

    그저 제시되는 최신 기술들만을 쫓아 가면 다 비슷하고 뻔한 자동화 경험만으로 끝나 버릴수 있다. 기술 경쟁만으로 이런 인간의 반대급부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달리다 보면 나도 경쟁사도 만든 경험들이 다 똑같을 수 있다. 좀 더 재밌고 각기 다른 차별적인 경험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이런 욕구의 디테일들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센서와 인공지능의 로직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세상이라면 오히려 더 이런 인간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해진다.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보다 세밀한 단계로 나누고 각각의 작은 단계를 너무 쉽게 컨텍스트가 파악되었다고 해서 건너뛰진 않았는지와 같은 치밀한 분석이 중요하다. 기획과 개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요즘, 그런 경험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기술 외에도 인문학과 인간에 대한 학습을 게을리 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UX 디자이너들의 역할도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평준화/무차별화 되버리기 쉬운 전자동 컨시어지 서비스 속에서 불편을 자아낼 수 있는 요소를 보다 면밀히 바라보고 인간이 개입해야 하는 순간과 그 순간에 제시되어야 할 옵션들을 누구보다도 잘 고민할 사람들이 UX 디자이너들이다. UI를 미려하게 하는 것이 아닌, 컨텍스트를 어느 정도 학습했다고 해도 이 순간 사용자에게 어떤 옵션을 제공해야 보다 불편함이 없는 스마트한 편리함을 줄지, 확인 절차는 또 어느 정도로 받는 것이 적정한지 등 다들 놓치기 쉬운 그런 작은 경험들을 판별할 수 있는 기업과 제품이 앞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거기에 차별화와 시장이 있고 그만큼의 달콤한 리턴이 돌아갈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인간의 욕구들이 앞으로 보다 더 자동화될 머신들에도 항상 같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좀 더 다양한 경험들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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