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 Photo

유치원 학예회, 즐겁지만 씁쓸했던 이유

해마다 이맘때면 맞이하게 되는 유치원 학예회/음악회...

유치원 입장에서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한해를 정리하는 이벤트이기도 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또 한살을 더하며 커가는 어린 아이의 재롱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행사 기획의 완성도나 아이들의 재능 여부를 떠나 아직 핏덩이같은 느낌이 있던 녀석들이 벌써 저렇게 컸나 라는 느낌을 무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에 정말 뜻깊고 또 모든 일 제쳐서라도 꼭 가보게 되는 이벤트임은 맞다.


아이들이 좀 많다보니 이런 유치원 음악회가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가서 볼 때마다 감동이 북받쳐오름을 느낀다. 늘 품안의 아이같던 녀석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뜨거운 조명을 받는 상황에서 춤추며 노래하고 또 뭔가를 표현하는 걸 보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엄마 아빠 감사하다는 인사와 노래를 하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기까지 한다.


직장 일에 바쁜 아빠들한테도 이런 유치원 이벤트는 연차를 내서라도 꼭 가보시라고 권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절대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든 (분만실 빼고) 감동에 젖을 수 있는 순간이기에 그냥 바쁘다는 핑계로 빠져버리기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감동을 생각하며 무대를 찾았고, 여느 때와 같이 음악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내 아이 다른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도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웠고, 그런 자식들을 보는 엄마 아빠의 웃음, 환호성도 여전했다. 2시간여의 한바탕 잔치는 그렇게 예와 다름없이 잘 치러졌다.


그런데 그런 흐뭇함 속에서도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아이들의 실제 모습을 보지 않고 휴대폰 카메라 화면으로만 보는 안타까운 모습이나, 공연은 둘째고 자기 아이가 자기 한번 쳐다봐달란 식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런 모습도 아니었다. 무대 위의 기특한 모습을 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나 그런 소중한 순간에 아이와 Eye Contact 한 번 하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나도 크게 그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게 아니라 내가 내내 불편했던 것은 무대에 선 유치원 아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중 우리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5살반 / 6살반 / 7살반 이렇게 나이에 따라 세 종류의 그룹이 있고, 나이에 따라 조금씩 능력이 다르니 공연 내용도 좀 다르게 구성한다. 대충 10개 정도의 무대 공연이 준비되고 각 나이의 아이그룹들은 3번 정도의 공연을 하게 된다.


태권도나 악기 연주처럼 대사가 필요없는 퍼포먼스도 있고, 노래나 연극 등 대사가 필요한 퍼포먼스도 다양하게 있었는데, 그 대사가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공연이 다 영어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한국말도 서툰 가장 어린 5살 아이들도 나와서는 영어로 합창을 하고 6살반 아이들도 자신의 장래희망을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뭐 7살반 아이들의 연극은 물론이다.  10차례 정도 되는 공연중 내 기억에 우리말로 했던 공연은 맨 마지막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나와서 합창하는 것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 어린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노래를,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 줄이나 알까?


그런 모습이 기특한지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은 좋아했지만, 글쎄다

이 어린 녀석들이 이 부담스러운 무대위에서 "난 이런게 좋아요,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러이러한데 이런 점이 참 고마웠어요" 이렇게 서툰 우리말로라도 천천히 얘기하는 모습을 본다면 난 그런 모습에 충분히 손수건을 적실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저 무표정한 표정으로 외워댄 영어 문장을 눈치 보면서 얘기하고 그런 오물오물 알아듣기 힘든 영어 표현을 듣고 있는 엄마 아빠들...


환호성은 가끔 지르지만 전혀 소통이 안되고 있다

나는 나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어요 ~ 그 이유는요 ~  이런 얘기를 우리말로 진솔하게 엄마 아빠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엄마 아빠들 눈에 이쁠까... 어색하게 짜여진 영어 각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아이들이 직접 준비하게 한 그런 우리말 코멘트를 들을 수 있다면 훨씬 더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온통 영어였다. 우리가 그 어린 아이들 입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어색해서 흐름이 뚝뚝 끊기는 영어 연극을 보며 이해 못하는 부모들이 태반이었고, 그 귀여운 손주의 입술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글쎄...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아차 싶어 애써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과거에도 꽤 많은 영어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지는 않지만 올해 그 정도는 더 심해진 것 같고...


유치원 탓은 아닐 거다. (참고로 영어 유치원은 절대 아니다)

이런 모습에 대한 기대와 니즈가 있으니까 유치원도 그렇기 기획을 하겠지... 


5살난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귀중한 무대, 엄마아빠에게 나 이만큼 컸어요~ 라는 걸 보여주는 자리에 영어를 기대하게 만든 바로 우리 어른들이 문제 아닐까?


아이들이 무대위에서 진솔하게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유치원 학예회, 참 씁쓸함을 안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