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어둑어둑해질 때 도착해서 저녁에만 있었으니 제주에서의 밝음은 b 가족에게 처음이다. 그동안 제주도를 따로따로 각자각자 왔으나 이번처럼 b가 모든 가족을 다 데리고 온 것은 그러고보니 역시 처음이다.
그런데 다소 흐리다. 이 날 오후에 비소식이 있었는데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다.
아주 잘 잤다. 키즈펜션인 이곳 키즈코지에 준비된 새하얀 시트와 새 침구가 아주 마음에 든다. 고급 호텔에 가면 그렇게 잠이 잘 오는 이유가 따로 있나? 이 곳 키즈코지 펜션에서도 그런 푹 잠을 느꼈다.
아주 늦은시간까지 달린 녀석들은 아직도 곯아떨어져 있다. 혼자서 키즈코지 마당 산책을 잠깐 하고, 후다닥 차를 몰아 주변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좀 사왔다.
평소 탐내던 콜맨 그릴이 이렇게 턱 놓여져있다.
오늘 밤에는 기어이 바베큐를 해먹어야지~
마트에서 바나나랑 빵조각, 그리고 제주우유를 좀 사왔다. 제법 고소한 것이 제주 우유 마음에 든다.
키즈코지에는 이렇게 네스프레소가 준비되어 있고 캡슐도 제공된다.
아무도 안 일어난 조용한 아침을 캡슐 커피와 함께 한다. b는 이런 조용함이 참 좋다.
네스프레소는 이렇게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가장 좋다. 크레마가 점점 올라오는 것을 보며 하얀 연기와 함께 커피내음이 확 풍기는 순간, 비로소 남은 하루의 한꺼풀이 걷히는 느낌이다.
흐뭇하게 내린 커피 한잔을 들고 키즈코지 테라스에 앉는다.
이런... 애들이 깨버렸다.
잠과 함께 b에게 주어진 조용한 아침 선물마저 깨버렸다. 이렇게 내셔널지오그래픽 캠핑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 해먹 의자에 앉아 즐기려던 제주도의 아침은 그렇게 그냥 날아가 버린다.
이녀석들을 어떻게 한다...
그래, 아이들 주위를 돌리는데 이만한 것은 없지 !
키즈코지 펜션에는 이렇게 실내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이라 하기엔 좀 작을 수 있지만 애들에게는 충분한 수영장이자 어른들에게도 큰 자꾸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애들과 놀아주기 어려운 어른들한테는 고마운 시설이다.
뜨거운 물을 틀어 아이들을 방생하면 끝이다. 수영복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런 실내 수영장이 아니면 언제 누드 수영을 해보겠나.
즐거운 애들의 모습을 보고는 b마저 속옷을 벗어던진다.
덕분에 아이들도 최고의 아침을 보냈다.
가족 모두를 펜션에서 나오게 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들었다. 일단 애들이 펜션이 너무 마음에 들다보니 나가는걸 그닥 땡겨하지 않는다. 수영장에, 올레tv에, 각종 장난감 시설에 따뜻한 이부자리까지, 굳이 나갈 이유가 없는 리조트같은 곳이다보니 별로 나가는걸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제주도까지 와서 그러는 건 너무하지 않나...
겨우겨우 꼬셔서 나선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서야 펜션에서 나왔다.
배고파질 시간을 기다려 해물라면의 유혹으로 꼬신 것이다.
b가 생각하는 제주도 최고의 해물라면 장소가 있다.
정식 상호가 있는 곳이 아니다보니 지도에도 안나오고 찾아가기도 힘들다. 예전에 자전거 투어할 때 게스트하우스 왔다가 알게 된 이곳. 흰고래게스트하우스에 오는 사람들은 대충 알게 되는 곳인데 최고의 명당이다.
예전에 썼던 글 참조...
2015/07/25 - 제주도에서 비가 오면 꼭 가봐야 하는 곳들
2014/06/10 - [제주도 자전거 일주 코스] 3일째 스케치
야자수에 둘러 쌓인채 범섬이 보이는 바다를 끼고 있는 이런 곳이다.
지난 번에는 할머니께서 계셨는데 오늘은 아들인지 아저씨 한분이 맞아주신다.
비가 살짝 내리는데도 모두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는 여기까지 왔다.
찾아오는 수고로움을 잊게 만드는 이 맛.
사실 이 재료를 가지고 해물라면을 만들면 더 맛있게 끓일 수 있다는 생각을 b가 해본다. 절대적인 맛은 아주 약간은 아쉽지만 그 약간의 아쉬움을 홍합의 신선함과 이 포장마차(?)의 분위기가 충분히 커버해버린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함께 해도 최고다.
해물라면집 사장님께는 약간 느끼한 농심라면쪽 보다는 좀 더 맛있고 개운한 다른 브랜드를 써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가족들이 모두 흐뭇해하는 모습에 b는 만족하며 다음 일정으로 옮긴다. 많이는 안 오지만 비가 그래도 오기에 원래 예정했던 감귤체험 농장이나 에코랜드는 일단 내일로 미룬다.
실내 공간이라 비와 상관 없는 이곳이 이튿날의 백미이다.
오는 길에 잠시 비가 그쳐서 허무하긴 했지만, 녀석들이 환호성을 지른 곳이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전에 제주도 왔을 때 너무 늦게 와서 구경을 못했는데 오늘 녀석들 덕분에 드디어 경험해본다.
애들은 게임박물관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래도 될 만큼 대부분의 컨텐츠는 게임으로 채워져있다.
컴퓨터의 원리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하는 b의 바램은 여지없이...ㅋㅋ
갤러그며 팩맨이며 원없이 하다 갈 수 있는 곳이다.
b가 어릴 때 즐겨하던 돈킹콩이 없어 섭섭했다.
애들 게임하는 걸 보면 해상도니 그래픽이니 CPU니 그런 성능이 중요한게 역시 아니다.
컨텐츠 소재와 스토리가 좋으면 옛날옛적 게임이라도 애들이 좋아한다.
닌텐도여 스마트폰 세계에서도 흥하라~
한 2시간 정도 있었나?
게임에 빠진 녀석들이 안나갈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흔쾌히 나가 금새 또 바깥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이쁘다.
나중에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다시 한번 온다면 하루 종일 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은 뭐 먹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펜션 가서 바베큐'라고 답을 했다. 3명 찬성 1명 반대 표가 나왔다. 누가 반대했을까는 예상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다. 애들은 바베큐 파티라고 하면 좋아하니까 ^^
근처 하나로마트를 찾아가는데 아주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야 해서 꽤 무섭긴 했다. 비까지 오니까 더더욱...
제주도에 왔으니 당연히 집어야 할 흑돈 오겹살과 함께 프랑크 소세지 등 바베큐 거리를 사가지고 펜션으로 왔다.
배고프다고 아우성 치는 아이들을 잠시 놀게 하고는...
밥솥도 다 구비되어 있지만 밥은 그냥 간단히 햇반으로 데웠다.
정작 하려고 하니 은근 귀찮기도 하고, 사실 밖에서 맛있는거 사먹는거 보다 이렇게 사와서 해먹는게 식비가 더 들어간다. 하지만 제주도 펜션에서의 바베큐를 하는 경험은 애들한테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그냥 b는 고생스러운 길을 선택했다.
사실 이날은 둘째 녀석 생일이기도 했다.
미역국도 즉석으로 준비하고 ㅎㅎ
드디어 콜맨 그릴에 제주도 오겹 흑돈이 구워진다.
전날 저녁도 흑돈을 먹었는데 이틀 연속 흑돈이다. 그래도 될만큼 b 가족은 돼지구이에 환장한다.
흑돈을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무지 생각났지만 꾹꾹 참으며 오늘도 배를 떠뜨린다.
바베큐까지 다양한 액티비티가 다 가능한 이 키즈펜션에 다시 한번 만족의 미소를 날리며 흑돈의 향기를 씻어본다.
뜨거운 샤워와 함께 뽀송한 침대 안으로 몸을 밀어넣으며 다음 날을 기약한다.
벌써 다음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기대보다는 아쉬움에 잠이 아까울만도 한데 따뜻한 매트리스와 하얀 시트가 만들어 내는 아늑함은 모든 걸 녹여버렸다.
직전까지도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도 금새 쌔근쌔근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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